-
책의 서문에 리처드 도킨스는 ‘이 책이 내가 의도한 효과를 발휘한다면, 책을 펼칠 때 종교를 가졌던 독자들은 책을 덮을 때면 무신론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라고 다소 자신감 넘치게 글의 목적을 소개했다. 종교라는 거대한 집단에 맞서기에 앞서 기선제압이라도 하려는 것이었을까?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나도 리처드 도킨스의 훅(hook)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그 뒤에 이어지는 문장은 더욱 담대하다.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들은 약간만 도와주면 종교라는 악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신의 논리에 확신을 가지지 않으면 종교를 감히 악덕이라고 당당히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과연 그는 무슨 증거와 논리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일까? 두 문장 만으로 난 책에 깊숙히 빠지고 말았다.
담대한 주장을 입증이라도 하듯 이어지는 본문에서 리처드 도킨스는 매우 치밀하고 논리적으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책 전반에서 그의 논리 전개 방식이 인상적이다. 작가는 주장에 앞서 기초적인 개념들부터 파고 든다. 본문 첫 부분에 그는 아인슈타인이 이미 신의 존재를 인정했다는 교회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이 책에서 다룰 신(초자연적인 신)을 세부적으로 정의한다. 자신이 다루는 주제의 경계를 명확히 세워 논란이 생길 빈틈을 촘촘히 메운다. 그 뒤엔 종교가 내놓는 ‘신이 존재하는 증거’들에 대해 과학적 논리 전개 방식에 따라 조목조목 반박한다. ‘존재를 반증 할 수 없기 때문에 신은 존재하는 것이다’는 교회의 주장에 그는 기존 불가지론을 일시적 불가지론과 영구적 불가지론으로 나누고 ‘버트런드 러셀의 찻주전자’사례를 들며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수용된 독단적 견해의 요류를 지적한다.
주장의 진위 여부를 떠나 리처드 도킨스의 논리 전개 방식을 주목할 만 했다. 작가의 전개 방식은 빈틈이 없었다. 과학자가 아닌 일반인이 이해 할 수 있는 수준에 맞춰서 기초적인 개념을 설명했고 상식적인 사례를 들거나 또는 실험결과를 증거로 내세우며 주장을 단단히 했다. 논리 과정에서 두루뭉술하게 넘기는 것 하나 없이 하나하나 꼼꼼히 잡아 나갔다. 나는 종교가 없어서 종교 집단이 리처드 도킨스가 만든 논리에 어떻게 반박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로선 신이 직접 지구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 말고는 없어 보인다. 리처드 도킨스는 특별한 과학적 소양이 없더라도 책의 글만 잘 따라 간다면 그의 주장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도록 글을 잘 썼다. 주장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무릇 이렇게 쉽고 앞 뒤가 맞게 논리적으로 완벽한 글을 써야하지 않을까 싶다.
신의 존재에 대한 증거를 반박하는 증거로 그는 주로 진화론을 내세운다. 후반부의 책의 내용은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결이다. 그리고 그는 창조론에 비해 진화론이 내놓는 증거들이 더 많고 우수하며 모든 증거들을 토대로 과학적 추론의 결과 확률적으로 진화론이 더 가능성이 높다는 논조를 유지한다. 작가가 내놓은 몇가지 진화론의 사례들이 인상적이었는데 특히 도덕 챕터에서 내놓은 부산물 개념이 그랬다. 그의 또다른 책인 이기적 유전자에서 내놓은 논리에서도 ‘왜 생면부지인 사람에게도 측은지심을 느끼는지’를 설명 할 수 없었는데 여기서 리처드 도킨스는 진화론에서 파생된 ‘실수’와 ‘부산물’이라는 개념을 내세운다.
여기서 ‘실수’와 ‘부산물’이란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진화론에선 인간의 성적 욕구를 번식의 욕구에서 생겨난 것으로 본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적으로 맺어질 가능성이 제로이거나 불임으로 생식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이성에게도 성적 욕구를 느끼곤 한다. 이처럼 번식이라는 제한 조건은 사라졌지만 경험 규칙은 남아있는 현상이 ‘실수’와 ‘부산물’이다. 인간의 생존의 주요 수단인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 친절함, 이타주의, 관대함의 감정들이 생겨났었는데 이런 경험 규칙들이 프로그램 되는 과정에서 자신이 전혀 보답을 받을 가능성이 없는 사람에게도 측은지심이 생겨나는 ‘실수’가 발생했다고 한다.
인간의 기본 도리로 교육받은 측은 지심을 유전적인 실수라고 표현하니 거부감이 먼저 들기 마련인데 리처드 도킨스는 이것을 ‘다행스럽고 고귀한 실수’라는 센스 있는 표현으로 거부감을 뒤집어 버렸다. 자신의 주장을 말하기 위해선 명확한 논리뿐만 아니라 상대를 감동시킬 수 있는 표현 또한 중요한 것 같다. 만약 단순히 ‘실수’라고만 말했다면 나에게 이 챕터는 숭고한 도덕적 가치를 폄하하는 글로만 남았을 것이다.
마지막 부분에선 신의 존재를 거부하는 것뿐만 아니라 신이 없어진 세상에 공백을 채우려는 노력도 하는데 이 부분은 이 책에서 유일하게 아쉬운 대목이다. 공학과 과학이 비슷한 분야라서 그럴까 나는 리처드 도킨스의 논리를 대체로 이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내놓는 결론이 다른 일반인들도 공감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과학으로 메울 수 있다’고 하지만 대다수의 일반인들은 과학적으로 사고하지 않고 또 과학에서 위안을 얻지도 않는다. 일반인들에게 과학이란 자신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줄 수 있는 도구 정도이지,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구에서 감동을 느끼는 사람은 극소수다. 리처드 도킨스로 이를 의식했는지 다른 챕터들 만큼 확신 차게 발언하지 않는다. 아마 일반인들을 설득 하려고 하기보단 종교 이외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보려고 했던 것 같다.